장애인 탈시설 ★ 이상을 넘어 현실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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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Kin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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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법이 된 ‘탈시설의 권리’

2026년 4월 23일,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 기록되었다. 재석 의원 180명 중 찬성 177명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계가 거리에서 20여 년간 외쳐온 목소리가 마침내 법률이라는 그릇에 담긴 것이다.

이 법 통과가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국가 법전에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데 있다. 시설이라는 격리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상식이 비로소 제도적 당위성을 얻었다. 법안이 발의된 지 536일 만에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국회 본회의장 또는 법안 통과 관련 장면

축제 없는 현장, 남겨진 가족들의 불안

그러나 역사가 굴러가는 속도와 달리, 정작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모여 있는 현장의 공기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법률의 잉크는 채 마르지 않았는데, 현장에는 환호 대신 우려와 긴장이 감돈다.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의 약 80%는 발달장애인이며, 이들의 평균 시설 입소 기간은 18.9년에 달한다. 사실상 생애 대부분을 시설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시설을 나가 지역사회로 가야 한다’는 당위는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삶의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한 시설의 폐쇄 과정에서 자립을 추진했던 이용자 중 일부가 가족의 반대로 결국 다른 시설로 재이동해야 했던 사례는, 지금 현장이 마주한 혼란과 온도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갈등의 본질: ‘돌봄의 독박’이라는 현실적 공포

그렇다면 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법안이 정작 당사자 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가.

이 갈등은 탈시설이라는 ‘방향성’ 자체에 대한 이념 찬반 논쟁이 아니다. 본질은 “시설 문을 나선 뒤, 그 돌봄의 책임을 결국 누가 질 것인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에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장애인 돌봄의 책임을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해 왔다.

핵가족화와 가족 해체, 자녀보다 먼저 늙어가는 부모의 고령화 속에서 거주시설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런 구조적 배경과 대안 마련 없이 진행되는 탈시설은, 부모들에게 국가가 보호 의무를 벗어던지고 그 짐을 다시 늙어가는 가정에 떠넘기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반대편의 목소리도 분명하다. 탈시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아무리 운영자가 노력해도 집단거주 시스템 자체의 한계는 명확하며, 개인의 삶과 존엄을 지속적으로 제한하는 구조라는 점을 지적한다. 두 입장 모두 ‘발달장애인의 삶’을 걱정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삶을 지킬 방법에 대한 신뢰가 서로 다른 곳에 있을 뿐이다.

가족이 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있는 일상적인 모습

대안 없는 폐쇄가 아닌, ‘맞춤형 기능 전환’이 답이다

여기서 가장 아프고도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극심한 자해·타해 위험이 있거나 상시적인 의료 지원 없이는 생명이 위태로운 초고도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에게 준비 없는 탈시설은 자립이 아니라 방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시설의 무조건적 폐쇄가 아닌, 시대적 흐름에 맞춘 ‘맞춤형 기능 전환’이다.

기존의 집단 수용 중심 시설은 과감히 축소하되, 정말 고집중 케어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는 전문 의료·행동치료 기반의 ‘특수 케어 센터’로 그 기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률적인 지역사회 방출이 아니라, 최후의 복지 안전망으로서 남겨두는 선택지다.

동시에 지역사회 안에서도 대안이 갖춰져야 한다. 빌라나 주택 같은 일반 주거 형태를 취하되 전문 인력이 상시 순환 근무하는 소규모 ‘집중 케어형 그룹홈’ 같은 중간 단계 모델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이런 다각적인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을 때, 부모들도 비로소 안심하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소규모 그룹홈 또는 지역사회 주거 공간의 모습

시설 밖의 세상이 또 다른 감옥이 되지 않으려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공포 후 시행까지 약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둔다. 실제 법이 현장에서 작동하기까지, 하위법령과 세부 제도를 설계하는 앞으로의 시간이 이 법의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다.

지금 국가가 집중해야 할 일은 시설 폐지 시점을 못 박는 이념적 선언이 아니다. 시설 밖으로 나온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방치되지 않고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인프라를 짜는 일, 그리고 시설을 합리적으로 재편하는 일이다.

탈시설은 시설 문을 닫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설 밖 세상이 또 다른 독방이나 가족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촘촘한 복지 그물망과 정교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현장의 불안을 지우는 유일한 길이다.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삶의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가 ‘권리보장’이라는 이름 뒤에 책임져야 할 진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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